원주이씨유래


원주이씨
原州 李氏
원주 이씨 
관향
강원도 원주시
시조
이신우(李申佑)
중시조
이반계(李攀桂)
이을계(李乙桂)
이천명(李天明)
집성촌
강원도 원주시
전라도 담양군
전라도 해남군
전라도 강진군
전라도 진도군
경기도 파주시
충청도 단양군
링크


강원도 원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신라의 전신인 진한 양산촌장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대손(遠代孫)이며 문종조에서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공을 세워 경흥군(慶興君)에 봉해졌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이신우(李伸佑)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경주이씨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원주(原州)로 삼게 되었다.

후대(後代)로 내려오면서 월성군파(月城君派-1747년 경주이씨로 환원), 경원군파(慶原君派), 강릉공파(江陵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등 크게 3개파로 나뉘어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다.


  분파

월성군파(月城君派) - 1747년 경주이씨족보 발행시 경주로 환원

경원군파(慶原君派) - 파조(派祖)는 이반계(李攀桂, ? - 1392) 호(號)는 송헌(松軒)이며 작위(爵位)는 경원군(慶原君)이고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고려시대 말기,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절의를 지켰다.
고려왕조에서 예부상서(조선시대의 예조판서에 해당)를 지냈고, 조선왕조에서 태종 이방원이 그의 절개를 높이 사서 영의정을 추증(사후 작위나 벼슬을 내리는 일)하였다.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의 문인이다.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과는 친구사이이며, 예부상서 시절에는 이방원을 제자로 가르쳤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여러 벼슬을 지내고 전의교위(殿毅校尉), 신호위영중랑장(神虎衛嶺中郞將)과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하였다.
1392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공양왕을 몰아내고 조선을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과 함께 강원도 원주 사전리 치악산에 은거하며 고려의 운이 다하고 이씨의 세상이 됨에 차라리 굶어죽을지라도 “이씨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나오지 않았다.
이후 단식 7일 만에 죽으니 후에 태종 이방원이 그의 절의를 가상히 여겨 경원군(慶原君)에 추봉하고 증직으로 영의정에 추증하였다. 경현사(景賢祠)에 배향되었고 충절(忠節)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강릉공파(江陵公派) - 파조(派祖)는 이영화(李英華)[1430~1517]는 과거에 급제한 뒤 투필첩호방(投筆捷虎榜)으로 무과에도 뽑혀 감역(監役)을 역임하였다.
이후 직산현감과 홍산현감을 거쳐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를 역임하던 중 1453년(단종 원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란(癸酉靖亂)을 일으켜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등 반대파를 살해하자 멸문지화를 염려하여 지금의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로 피신해 정착하였다.
해남의 원주이씨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11명의 충신과 3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장(李樟), 이남(李楠), 이원해(李元海), 이홍신(李弘信), 이지훈(李之訓), 이계정(李繼鄭) 등을 들 수 있다.
이영화는 맹건(孟健). 충건(忠健). 인건(仁健). 의건(李義健). 예건(禮健). 지건(智健) 등 여섯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해남으로 내려오지 않은 충건을 제외한 다섯 아들이 해남 근교에 흩어져 세거하면서 해남 지역 원주이씨의 기틀을 다졌다.
1991년 원주이씨대동보 발간 때 영화(英華)의 조부(祖父)이신 을계(乙桂)로 상계하여 파조(派祖)로 삼았다.

판도공파(版圖公派) - 파조(派祖)는 이천명(李天明)이며 자헌대부(資憲大夫)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